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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별..그리움
글쓴이 은혜
라우풀  1198 등록시간  14-03-11 11:11
조회수  4,236 추천수  0
제목   아빠
아    빠

 

미란인 오늘도 여전히 퉁퉁

불어터진 얼굴로 등교를 한다.

아침에 일찍 깨워 주지 않아서

머리끝까지 심통이 난 것이다.

 

<미란아,그래도 아침은 먹고 가야지.>

<됐어!>

<학교가면 배고플 텐데,조금이라도 먹고 가.>

<싫다고 했잖아!아빠나 먹으란 말야!>

현관까지 미역국에 밥을 말아 들고 나와

한 숟가락이라도 먹이려 하시는 아빠를

짜증스런 말투로 쏘아 붙이고는 도망치듯 나와 버렸다.

 

학교로 뛰여 가는 내내 깨워주지 않은 아빠가 원망스러웠다.

30분만 일찍 깨워 줬으면 예쁘게 머리도 하고

옷도 깔끔하게 다림질해서 입고 나올 수 있었을텐데...

 

요즘 미란인 한 학년 위의 태영이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한참 외모에 신경을 쓰고 있던 참이였다.

어제는 아빠 주머니에서 만원짜리 한장을 훔쳐

큐빅이 촘촘히 박힌 예쁜 머리띠도 샀다.

물론 태영이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였지만

같은 반의 진영이에게 뒤지고 싶지 않은 이유도 있었다.

미란인 학기 초부터 진영이가 가지고 있는 것이라면

무조건 다 가지고 싶었고 그래서

아빠 호주머니에서 돈을 훔쳐서라도 결국엔 사고야 말았다.

 

가난한 집이 창피해서 부잣집 딸인 척 하는 미란이에겐

등교 하면서 기사 아저씨가 모는 고급 승용차에서

내리는 진영이가 마냥 부러웠던 것이다.

그 뒤로는 진영이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이 얄밉고 심술이 났다.

그러던 터에 좋아하는 태영오빠도 은근히

진영이에게 관심이 있는 눈치였기에

미란인 진영에 대한 곱지 못한 시선을 날로 더 해만 갔다.

 

미란인 교실 문을 들어서는 순간

머리띠가 너무 예쁘다며 모두들 부러운 눈초리로 쳐다보자

자신이 진영이 못지 않은 부잣집 딸이 된 것만 같아 우쭐하는 기분이 들었다.

미란에겐 아빠에게 퉁명스럽게 대했던 기억은 아예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런데 점심시간이 지나고 갑자기 선생님께서 불어

교무실로 내려 간 미란인 그 자리에 서서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아빠가 오신 것이다.

후줄근한 옷차림에 더러운 운동화, 고생한 흔적이 역력한

두 볼이 움푹 패인 파리한 얼굴에 한 쪽 다리를 절며...

막노동을 하시는 아빠에게서 나는 역한 땀 냄새와

초라해 보이는 아빠의 모습이 미란인 너무나 창피했다.

고개만 푹 숙이고 누가 볼까 내내 불안하고

수치스러운 기분마저 들었던 미란인

교무실을 나와 현관으로 향하는 내내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런데 저쪽에서 걸어오는 태영오빠가 보였다.

태영오빠와 눈이 마주친 순간

<기사 아저씨, 오늘은 먼저 가세요.>

미란이도 모르게 내 뱉은 말이였다.

순간 아빠는 표정이 굳어지며 당황한 빛이 역력했지만

미란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셨다.

그렇게 현관을 나서는 순간

미란인 그런 아빠의 모습에 더 화가나 소리를 질렀다.

<여긴 뭐 하러 와! 누가 아빠보고 학교에 오랬어?>

<............>

<얼른가!! 애들이 보면 창피하단 말야!>

<미란아, 아빠가 그렇게 창피하니?>

<몰라서 물어? 얼른 나가기나 해!>

아빠는 더 이상 묻지 않으셨고

미란인 누가 볼까 조마조마한 마음 뿐이였다.

 

다음날 아침,

아빠는 여전히 새벽부터 준비하신 도시락 가방을 쥐여 주시며

아침밥을 먹으라고 하신다.

하지만 미란인 그날 아빠가 학교에 오신 것에 대해서

너무나 화가 나서 도시락도 그냥 두고 나와 버렸다.

 

아빠는 변변치 않은 살림에도

항상 내 도시락만은 돈을 아끼지 않으셨다.

점심시간 수위실에 기사 아저씨가 맡겨 놓으셨다며

친구가 도시락 가방을 건네 주었다.

기사 아저씨란 말이 내심 걸리긴 했지만

미란인 그냥 친구가 그렇게 한 말이거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도시락을 쳐다보기 조차 싫었다.

 

그리고 수업을 거의 마칠 즈음이였다.

선생님께서 황급히 부르신다며 빨리 교무실로 내려오라는

친구의 말에 미란인 덜컥 겁이 났다.

또 아빠가 오신게 아닐까...

교무실로 들어선 순간 미란인 안도의 한숨을 내 쉬였다.

하지만 미란일 쳐다보는 선생님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미란아, 아빠가 지금... 병원에 계신단다.얼릉 가방 챙겨와라. 선생님이랑 같이 가자.>

미란인 잠시 머릿속이 멍해지는 듯 했지만

<설마 별일이야 있겠어?>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왜 선생님까지 가세요? 저 혼자 가도 돼요.>

그때까지 미란인 그리 큰일이 아닐꺼라고 생각했지만

안쓰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는 선생님의 눈에 고인 눈물을 보는 순간

하늘이 무너지는 듯 했다.

 

병원으로 가는 내내 미란인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가난 때문에 미워하고 원망했던 아빠지만

안 계신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무섭고 두려웠다.

영안실에서 아빠의 얼굴을 확인하고 돌아서는 미란인

그토록 감추고 싶어 했던 아빠가 사무치게 그리웠다.

온통 상처와 시퍼런 멍으로 가득한

뼈만 남은 앙상한 팔과 다리,햇볕에 그을려

거무틱틱하게 벗겨져 버린 아빠의 얼굴과

10중에 반 이상 손톱이 빠져버린,

새벽에 도시락을 싸시던 거친 손이

이제서야 미란이의 눈에 들어왔다.

 

간암말기....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아빠는 혼자서

그렇게 견뎌 내셨고 고통속에 혼자 외롭게 떠나신 것이다.

그날 학교에 다녀가신 것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미란이가 졸업할때까지의

동록금을 내기 위해서였다는 선생님의 말에 미란인

그날 자신이 아빠를 향해 내 뱉었던 싸늘한 말들과

아빠의 슬픈 얼굴이 떠올라 가슴이 미여지는 듯했다.

아침마다 도시락을 싸주시던...

아침밥을 안 먹는다고 잔소리를 하던

아빠가 너무나 보고 싶었다.

아빠가 미란이에게 남긴 건 아무것도 없었다.

막막했지만 이제는 혼자 모든 것을 이겨내야 한다는 걸

미란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아빠의 모든 옷가지며 물건들을 정리한 후

이제 미란이도 학교에 가야 하는 날이 왔다.

도시락을 싸야 할 생각을 하니

아빠의 얼굴이 아른거리며 참을수 없는 눈물이 흘렀다.

 

그날 점심시간,

아빠가 수위실에 맡겨놓고 가신 도시락을

열어보지도 않았던 미란인 그제서야 도시락을 풀었다.

그리고 도시락 안에 들어있던 하얀 봉투를 발견했다...

아빠의 편지와 예금 통장...

 

<사랑하는 내 딸 미란아!>

<어떤 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너한테 해준 것도 없이 이렇게 험한 세상에

널 혼자 두고 가야 하는 아빠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

병원에 갔더니 간암이라고 하더구나.

수술하면 조금 더 살수 있다고 하지만

아빠는 그렇게 하지 않기로 결심했단다.

아빠가 없는 미란이가 더 행복할수 있을 것 같아서...

그리고 수술 할때 써야 하는 돈으로

우리 미란이 좋은 옷, 좋은 것 먹이고 싶었단다.

혹시나 나중에라도 아빠한테 미안한 생각 갖고

후회하거나 하진 마.

그럼 아빠가 더 미안해지니까...

아빠는 미란일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 사랑해.

힘들 때마다 우리 미란이 생각하면서 그렇게 견뎌 왔단다.

너에게 부족한 아빠가 되여서...

이렇게 또 널 혼자 두고 가는게 너무나 미안해.

우리 예쁜 딸 미란이...

한번 안아 보는게 소원이였는데...

후훗...

오늘 왠지 우리 딸 미란일 보았던 게

마지막일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

아빠 없다고 밥 굶지 말고

아침 밥 꼭! 꼭! 먹고 다니고

귀찮더라도 조금만 일찍 일어나서

도시락 챙겨가지고 다녀.

아빤 우리 공주가 밥 잘 먹고

건강한 것 밖에는 바라는게 없단다.

항상 아빠가 하늘에서 지켜 볼꺼야.

사랑한다....>

 

눈물로 얼룩진 아빠의 편지.

그리고 도시락 안에 들어있는 통장에는

아빠가 입을 것 못 입고, 먹을 것 못 먹고, 아픈걸 참아내며...

그렇게 평생을 모으신 1억원이라는 숫자가 찍혀 있었다.

 

<아빠, 나도 많이 사랑해...>

미란인 그제서야

조그만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흐느꼈다.

살아 계실 때 그렇게 아빠가 듣고 싶었던 말이였다는 것을 알기에...

이제는 하고 싶어도 할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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